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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감_이론과 실제, 그리고 알파고 - 삭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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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감_이론과 실제, 그리고 알파고 - 삭감(1)
2018-11-09     프린트스크랩


독자에게

글은 약 2년 전에 써두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글이라는 게 싱싱함을 잃어버리고 현실감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글을 올리는 것은, 애기가들에게는 그래도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듯해서다.

수정을 할까도 했는데,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 가볍게 두어 줄만 고쳤다.

부족하지만 글은 두 가지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

1) 어떤 반상 요인이, 또는 반상 밖 어떤 요인이 바둑을 변화시켰는가.
2) 반상의 어떤 조건이 수법의 배경에 숨어 있는가.

그리고, 문제의식이 반상 안팎을 오가는 터라, 이해에 도움이 될까 해서 다른 분야의 사소한 이야기를 설명에 집어넣었다.

어색함이 있고 논리 전개에 한계가 있겠다.
부족한 점은 너그럽게 봐주시라.

참고로, 이전에 오로에 올렸던 글 중에서 다음 글은 이번 주제와 관련이 깊다. 오히려 더 나은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문용직 수법’ > ‘수법의 경계’ > “넓은 세상에서 놀아라. 귀는 좁다”(2012. 01. 29) “초반, 반상을 적극적으로 짜나가라”(2012. 02. 29) “슈사이 명인의 삭감을 감탄하다”(2012. 03. 03)

글의 순서는 이렇다.

1) 삭감에 대한 이론과 실제.
2) 바둑의 본능.
3) 알파고의 삭감 수법 등.

1)과 3)은 서로 다른 시기에 써 둔 것인데, 함께 모아도 좋을 듯해 여기 묶었다. 2)는 본래 3)에 넣었던 것으로, 제외해도 좋은데 문득 ‘바둑의 본능’이라는 개념은 살려두고 싶었다.

감사! 

삭감의 하나 둘 - 집과 선분, 그리고 ‘넓다’

바둑 둔 지 47년이다. 본격적으로 공부한 건 43년 전. 서울 응암동 언덕 위 충암고 교정에 처음 섰을 때가 74년 여름. 한낮 해가 중천에 높이 떠 있었기에 소년의 그림자 둥글고 짧게 맺혀졌던 것이 눈에 선하다.

글은 97년부터다. 딱히 할 게 없어서 『바둑의 발견』을 쓴 것이 시작이었다. 그 후 20년. 아이디어 떠오르면 가볍게 메모는 하고 싶었던가 싶다. 쓰면서 배웠고, 『수법의 발견』(2005, 전 10권)도 썼지만 수법보다는 반상의 이치랄까 본질 쪽에 좀 더 흥미가 갔다. 언어를 다루고 세모와 네모 형상을 주의했다.

저번에 “알파고는 프로 정상을 두 점 접을 수 있는가”에 대해 글을 쓴 다음이었다. 2016년 동짓달 동지 때다. 문득 떠올랐다.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정리가 잘 된 책 하나가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의 묘 시리즈다. 1950년대 일본에서 사카다 9단이 책 6권을 펴냈다. 『坂田の碁』. 육민사에서 펴낸 『바둑의 묘』6권이 번역본이다.

재밌는 것은 시리즈의 순서다. 첫 권이 『공격의 묘』였다. 바둑은 포석부터 시작하기에 의외라고 하겠다. 하지만 사카다에게 바둑은 싸움이었다. 그러하기에 『포석의 묘』를 앞세우지 않았다.

돌아보면 『수법의 발견』시리즈는 정리가 없었다. 사카다의 책과는 달리 뚜렷한 안목 아래 쓴 것이 아니었다. 『날붙이기』『선분이 만나는 자리』『개울에서 달 건지기』『밖에서 길을 찾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두서가 없다. 그저 쓰기 편한 주제를 10개 골랐을 뿐이다.

지금 쓴다면 질서를 잡을 수 있을 거 같다. 지금은, 세모를 약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 2011년 가을. 오로에 수법 연재할 때다.
하루는 세모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처음엔 융(C. Jung)의 이론을 원용, 공간 지각과 관련해서 반상을 다루려고 했었다.

우연찮게도, 70년대 말 대학 2학년 때쯤 서강대 로욜라 도서관에서 독일의 심리학자를 몇 명 접한 적 있었다. 도서관은 당시로선 드물게 개가식이었다. 레빈(K. Lewin), 짐멜(G. Simmel), 융 등을 읽었는데 1930년대 독일의 정치적 격변에 대한, 레빈의 권위주의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에는 크게 감명 받았다. 의식에 위계가 있구나! 

그런 저런 것을 기초로 반상 설명하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었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는 순간 초보적인 기하학이 떠올랐다.(‘세모와 네모 심층에 자리 잡다’ > ‘문용직 手法’ 2011. 5. 31 & 6. 1) 세모 네모로 반상을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세모는 쓸 만한 아이디어였다.

세모로 행마의 기본을,
세모에 감성을 넣으니 두터움의 기본을,
세모에 공격과 수비를 넣으니 장문의 기본을,
세모와 석점 접바둑의 돌 배치를 동일하게 보니 접바둑의 힘을, 설명할 수 있었다.

『수법의 발견』중 『선분이 만나는 자리』가 세모와 손잡을 수 있겠다.

바둑판이 네모로 이뤄진 세계이고, 네모 이전에 세모가 먼저 있어야 하니 세모 가설의 장점은 없지 않다.

과학에 비유하자면 ‘세모, 네모’는 기초과학에 해당된다 하겠다.

예전에 오로에 쓴 두터움에 대한 글은 세모 네모 기초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이론이었다. 상징에 대한 철학 없이는 착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예를 하나 들면, 칸트를 이어받아서 카시러(E. Cassirer)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었는데(같은 제하로 번역책이 있다), 상징을 다루는 인간 이해에 깊은 획을 그었다. 필자의 두터움 이론에는 그의 영향이 컸던 것을 밝히는 게 좋겠다.


그리고 문득! 오늘, 삭감이 생각났다.
삭감만 넣으면 될 거 같다. 수법을 세모 네모로 보는 안목에 매듭을 지을 수 있겠다 싶다.

삭감은, 정방형을 지향하는 상대의 모양을 제한하고 축소시키는 수법이다.

삭감이 상대의 모양을 제한하는 수법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암묵적인 인정과 명시적인 설명의 차이는 크다. 설명과 이론의 가치는 주제 못지않게 중요하다.

써보겠다. 애기가 여러분이 바둑의 질서를 잡고자 할 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글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장 삭감의 아이디어와 역사
2장 집 모양의 이치와 급소의 이치
3장 선분으로 반상 보기, 급소 보기
4장 삭감의 숙제와 ‘넓다’는 현상

I. 삭감의 아이디어와 역사

일본 바둑에서 삭감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1582년 어성기 바둑에서다. 하지만 너무 믿지는 마시라. 다른 모든 책을 찾아보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미심쩍어 잠깐 보니, 1582년에 두어진 바둑은 적어도 두 개가 있다. 1582년 6월 1일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혼뇨지(本能寺)에서 뒷날 초대 혼인보 산샤(算砂)의 대국을 관전했다. 기사들이 공식적으로 녹봉 받기 시작한 시기는 1612년. … 잘 모르겠다! 넘어가겠다.

▼  (1도) 1582년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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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수법이 바둑의 역사에 등장했던 것이다. 삭감(削減)이다. 한자 뜻 그대로, 상대의 집을 살짝 깎는 수법. 여기 1도의 좌변 백1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에서는 저런 경우엔 언제나 A 침입 아니면 B 끊는 수, 둘 중 하나를 선택했다.

1도의 마늘모 삭감은 일본 바둑의 독창적인 발명품이었다. 중국엔 없었다. 물론 더 뒤져보면 어디선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마늘모 삭감이 20세기 이전 중국의 바둑에서 나온다 하더라도 그 착상이나 쓰임새는 전혀 달랐으리라.

중국의 돌 중심 규칙에서는 싸움이 언제나 첫 번째 행동 방침이었다. 반상에 남은 돌의 비교로 승부를 정한다는 규칙이 있었기에 집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일본은 집 중심 규칙. 집이 많아야 이기는 놀이. 그러므로 상대의 집을 줄이고 제한하는 것이 사고의 첫 머리에 떠올랐다. 집이 많으면 그 집만큼 많은 개수의 돌을 채울 수 있기에 집으로 다투거나 돌의 개수로 다투거나 결과에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집 중심 규칙이야말로 놀라운 혁명의 예고였다.

의문은 있다.
과연 마늘모 어깨짚음은 처음부터 삭감의 아이디어로 나온 것일까?

일본 바둑에서 마늘모는 싸움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다음 2도는 그 하나의 예로, 이런 바둑은 17~18세기에 많이 볼 수 있다.

▼ (2도) 18세기 초 백 井上因碩 흑 道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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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3은 조심한 것. A로 날일자하면  B, C, 3 순으로 끊어 싸워올까 염려했다.

<center><div class=caption><center>▼ (2-2도) 18세기 초 백 井上因碩 흑 道知 </center></div><gibo>showgibo('http://open.cyberoro.com/directUp/2018/2-2도 18세기 싸움의 마늘모.bdt(1).ntf',400,'center');</gibo></center>

이하 14까지는 백도 할 만해 흑이 유리한 결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수순의 정밀함은 높은 수준이다.

1. 일본에서 삭감의 수법이 탄생하다

삭감은 왜 일본에서 발생했을까?
중국은 삭감의 착상이 불가능했을까?

중국은 삭감의 착상이 거의 불가능했다.
중국은 병법의 관념 아래에서 포석을 진행했다. 3도가 그 예다.

▼ (3도) 고대 중국의 전형적인 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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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점의 배경을 설명하면 이렇다.
백1, 흑진에 싸움 거는 것. 흑2, 백1과 좌하 백의 연결 차단. 백3, 후방에서 응원.
백7 백9, 진지 구축. 흑6 흑10도 그와 같다. 백11~흑14 침입하고 응원.

포석에서 전쟁을 준비하는 내면이 전해진다. 그리고 여기엔 아니 나오지만 상대를 급습하려고 했던 것이 그들의 대국 심리였다. 전쟁터에서는 그렇다. 일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이른 시기 일본의 바둑 하나 보도록 하자. 일본이 중국과 다른 출발을 했다 해도 반상에서 전쟁의 불안까지 떨쳐버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반상은 불안한 세상이니 땅과 안정이 필요했다. 3선은 중시되었다.

▼ (4도) 1645년 백 本因坊 算悅 흑 安井算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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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목에서 소목을 누르는 백8은, 중국의 진(鎭)과 같은 수법으로 곧 누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백에게 세(勢)가 생겼지만, 세력의 쓰임새를 제대로 알고 있던 때가 아니라 흑도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저렇게 누르면 흑집이 한정(限定)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누르는 수법은 일찍부터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1582년 3패가 나와 불길했다는 혼뇨지(本能寺) 3패의 바둑에서 이미 나왔다. 5도 하변 백2(실전 백32)가 그것이다.

▼ (5도) 혼뇨지 3패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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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일자 누르는 수법을 오래 동안 실험한 것을 보면 그들은 발전성을 중시했던가 싶다. 발전성을 중시하면 상대의 발전성을 억제하는 게 중요하다. 억제하고 제한하는 것, 그것이 발전성을 다루는 것이었다.

집 중심 규칙에서는 확장이 중요하고 확장은 점차 발전성이라는 개념으로 대체되어 갔다. 그랬다. 일본은 발전의 개념으로 중국의 진지 구축을 대신하였다. 때문에 그들은 일찍부터 외목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변의 1착도 실험할 정도로 변의 발전성을 탐구했다. 한칸, 두칸, 세칸 등 다양한 협공의 시도는 좋은 예다. 변은 귀보다 발전성에서 앞서는 자리.

변의 실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이룬 바둑 하나 보자.

▼ (6도) 1696년 중국식 포석의 원조 백 道策 흑(2점) 安井仙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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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변 백7이 초점이다. 오늘날 중국식포석이라 불리는 포석임을 알겠다. 역사상 도샤쿠가 제일 먼저 착상했다. 중국식포석은 귀보다 변의 발전성을 중시하는 수법.

참고로, 일본 바둑에서는 외목과 고목의 차이가 뚜렷했는데 흥미로우니 잠깐 들여다보자.

▼ (7도) 고목에서의 응수,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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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도) 시미야와 죠와의 바둑 1821년 10번기 제7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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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고목에서는 상대가 소목으로 걸쳐 들어오면 곧 바로 응수했다는 점이다. 필자가 본 모든 바둑에서 그랬다. 예외는 아직 못 봤다. 7도의 우상귀, 그러니까 8도 좌상귀의 경우가 가장 널리 쓰였다.

8도는 내기 바둑으로 유명한 시미야(四宮米藏)와 뒷날의 명인 죠와(丈和, 당시 6단)의 두점 바둑 10번기 제7국이다.

이유가 뭘까?
답은 역시 ‘불안’에 있다.

외목은 3선. 고목은 4선.
3선은 땅에 가깝고, 4선은 하늘에 가깝다.
4선은 그러므로 불안하다.

삶이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흔히들 말한다. “삶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땅에 뿌리 내리고 살아야 한다.”  땅 위에 살고는 있지만 현대인에게 도시는 땅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시골이 땅으로 인식된다. 도시인의 불안 뒤에 숨은 무의식적 인식이다.

반상을 땅과 하늘로 구별하는 것은 일본이나 중국은 물론 우리도 다르지 않다. 그렇게 인식해두어야 비로소 우린 반상을 손쉽게 다룰 수 있다. 그것은 모든 놀이의 본질에 들어가는 현상이다. 그 현실적인 힘은 종교 현상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도심 한 가운데 있더라도 절이나 성당에 들어가면 불현듯 세계가, 종교적으로 이론적인 우주관이 몸에 잡힌다.

일본이 바둑을 논리적인 게임으로 바라봤다면, ‘불안’과 같은 개념으로 수법의 배경을 뒷받침하는 것은 너무 모호한 거 아닐까?

맥과 사활과 같은 영역에서는 순전히 기호 수준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결론 또한 ‘도 아니면 모’다. 하지만 초반에는 누구라도 예외 없이 ‘땅과 하늘’의 논리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세력의 관념이 뚜렷하지 않고 발전성의 관념도 구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엔, ‘불안’ 같은 요인이 더 더욱 착수의 배경으로 작용했으리라고 본다.

참! 변 중시를 논했는데, 변에 제1착 둔 바둑 하나 보자. 사상 최초의 변 1착 바둑.

▼ (9도) 1625년. 변 1착 백 道碩 흑 (一世) 安井算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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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해설하자. 백10은 삭감이 아니다. 이하의 수순을 몇 수만 따라 가도 알 수 있다. 이 바둑이 궁금하면 오로 >문용직 手法 >포석의 넓이 >포석의 산책 – 변의 제1착 – 귀로 향하는 길 2005. 5. 28. 수읽기 수준 깊다.

변의 1착은 드물지만 1898년 뒷날의 슈에이 명인도 둔 적 있다. 단 흑1을 4선에 두었다. 1957년에도 두어진 적 있다. 아마 더 있으리라.

반상에서 점차 지식이 늘어갔다. 지식이 쌓이면 통제의 힘이 커진다. 통제의 힘이 커지면 멀리까지 다녀올 수 있다. 아이들이 커면 집 앞 동산을 다녀와도 부모는 걱정하지 않는다. 『莊子(장자)』에, 배부르게 아침 먹으면 하룻거리 아침에 출발해 저녁에 돌아와도 여전히 배는 든든하다. 천리 길엔 3월 숙량.

통제력이 늘어나는 만큼 변으로의 전개가 발전했다. 넓게 넓게 나아가는 것이다. 초기에는 두칸 두칸으로 전개를 제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넓게 벌리게 된다. 가장 아름답고도 효율적인 벌림은 앞서 6도에서 보았던 도샤쿠의 중국식포석이다.

꾸준히 실험했다.
꾸준하다…. 이것이 실로 놀라운 일인데, 대체 일본은 어디에서 그 힘을 가져왔을까?

자, 이제 진짜 중요한 문제에 접근했다.
바둑을 알고 싶다면, 바둑의 깊이를 의식적으로 다루고 싶다면, 알아야 할 문제.

은유적 용어와 형상 재현의 용어.

그 차이가 답이다. 핵심은, 정신적 에너지의 자유로운 분출에 미치는 용어의 영향력이다. 의식의 상대적인 해방 여부다.

『현현기경』‘32字 釋義(석의)’ 중에서 삭감과 관련 깊은 것을 몇 개 보자.

▼ (10도) 현현기경 속의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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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썼다. 백1 鎭(누르다), 백2 飛鎭(일자로 누르다), 흑3 曲鎭(구부려 누르다), 흑4 大飛(비상하다), 흑5 飛(날다).

일본은 달리 썼다. 백1, 흑3은 한칸의 범주에, 백2 흑5는 날일자의 범주에, 흑4는 눈목자의 범주에 넣었다. 형상을 재현하는 언어로 속성을 잡아챘다. 언제부터인지는 불확실하다. 알아보다가 말았다.

은유적 용법이 주는 이미지의 압력은 대단하다. 10도 백1 두면서 “진(鎭)!”하고 두드려보시라. “누르자!” 그 경우 다른 거 생각할 수 있는가? 살아가면서 우리에게는 갖가지 마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르지만, 한 순간에 하나의 대상을 두고서는 하나의 개념, 하나의 생각 밖에는 할 수 없다. 

중국의 바둑은 은유적 언어가 주는 이미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법의 한계가 그것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은유적 용법이 주는 강박에서 벗어났다. 바로 이 갈림길이, 바둑 역사에서 실로 중요하기 짝이 없는 분기점이었다.

인간 세상의 무게, 그 관념적이고도 문화적인 무게에 눌리지 않았기에 일본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것은,『서유기』에서 행동을 제어하는 머리띠인 금고아를 손오공이 벗어던진 것에 비할 수 있겠다.

일본은 ‘반상의 규칙’ 속에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중립적 도구를 얻었다. 그것이 이르면 16세기 말에 일어난 사건이었고, 20세기 초 일본이 중국을 석점 앞서게 되었던 힘이다. 16세기 일본의 실력이 중국에 비해서 2점 정도 뒤졌던 것을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진보를 이루었다고 하겠다.

그 전환은, 종교에서의 세계사적인 전환점을 참고하면 보다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국가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도 그러하니, 문명 차원의 이야기야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인류 역사에서 그것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와 관련한 문제는 심리학과 철학, 사회학 등의 큰 관심거리인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프로이드(S. Freud)의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문명과 그의 불만)를 들 수 있다. 마르쿠제(R. Marcuse)의 Eros and Civilization(에로스와 문명)은 그에 대한 주석서다.

답의 하나는 종교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적인 차원의 종교.

예를 들어 기독교의 사랑을 보자. 그것은 참으로 엄청난 양의 동물적 에너지를 제어하게 해 주었다. 마음을 다루게 해서, 많은 고대 문화권에서 행해진 동물 에너지의 감정적 분출을 통제하게 해주었다.

갖가지 대상에 마음을 쏟으면, 에너지는 그 대상을 향해서 다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내면의 점(点) 하나로 마음을 쏟으면 에너지는 달아나지 않는다. 모이게 된다. 명상에서 지(止)가 크게 유용한 이유다.

바둑에서 그랬다. 일본이 중국의 은유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바로 정신 에너지의 해방을 얻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11도는 차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백1은 누르는 걸까, 확장하는 걸까. 확장으로 쓰였다.

▼ (11도) 17세기 말 백 道策 흑 杉村三郞左衛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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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언어 쓰면 세상을 밝게 바라볼 힘을 얻는다. 어둔 언어 쓰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두터운 수법을 쓸 때엔 마음이 두터운 감정으로 덮인다. 날일자 건너붙임 할 때엔 마음이 비수처럼 서늘하고 예리해진다.

감성은 대상과 연계되어 만들어지는 것. 바둑과 같은 세상에서도, 언어와 감성 … 그런 것이 넓혀지지 않고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알겠다. 오늘, 삭감을 이야기하면서 역사와 언어를 둘러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놓칠 수 없는 주제다.

그래?
아, 이창호 이세돌이 그런 거 저런 거 다 알아서 그리도 바둑 잘 두나?

잘 두는 것과 이해는 다른 것이다. 하지만 서로 겹친다. 이해가 깊어지면 잘 둘 수 있다. 초보적인 이해 없이도 이창호 이세돌이 바둑을 둘 수 있었던가? 이제 필자는 약하다. 그래도 무지 잘 둘 자신은 있다. 20대 싱싱한 몸과 머리에 더하여 여기 쓰는 오늘의 지식이 주어진다면 말이다. 반상을 크게 휘둘러볼 수 있다. 헛말 아니다.

어렵긴 하다. 이론과 실전.

네웨이핑은 말했다. “기보 연구보다는 실전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후지사와도 “해설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프로의 경우다. 이미 모든 수법에 대해서 다 알고 난 다음이라 능동적이고도 독창적인 개성을 강조한 것이다.

의식에 길을 여는 게 좋다. 배우면 알고 담아 두면 쓰임새가 나타난다. 순간적으로 무릎 치는 경험 있다면 더욱 좋다. 곧 지평이 트여지는 것으로 안목이 밝아진다.

그런 경험은 제도적으로도 주어진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고교에서 대학으로 진학할 때가 좋은 예다. 집을 벗어나고, 대처(大處)로 나가고… 그리 하면 문화적 충격 온다. 바둑에도 있다. 연구생으로 등록하고 도장에 들어가면 작은 통과의례가 주어진다.

아마추어의 경우 그런 제도적 장치는 없다. 하지만 삭감의 경우,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일종의 통과의례가 될 수 있다. 안목 넓히는 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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