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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음모자의 사이버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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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음모자의 사이버 생활^^
2009-03-26 조회 10281    프린트스크랩
 

 

제대 후 학교는 '짤려' 있고, 다시 가야하나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에 정신을 못 차리고 이리뒹굴~ 저리뒹굴~ 하던 차에 컴퓨터란 놈을 만나게 됐습니다. 명색이 공대라고 다니던 넘이 그때까지 컴퓨터도 제대로 켤 줄을 몰랐으니... ㅡㅡ;;


하여간 우야둥둥 중고라곤 하지만 내겐 그 어떤 가전제품(?)보다 신기했던 그 이름도 찬란한 하드 170메가 386피시.

A: 드라이브는 5.25인치도 사라진 지금, 그런 게 있었는지 기억도 가물거리는 시디롬 크기의 사각형 8인치 드라이브.

하드 170메가라는 어마어마(?)했던 용량을 도대체 뭐로 채울까? 하는 고민과 함께 저에겐 도스(DOS) 공부란 사명이 주어졌지요.


윈도우를 안쓰던 시절 시커먼 화면에 C:\만 휑한 곳에서 당췌 뭘 해야 하는지 감을 못잡던 시절...autoexe.bat와 config.sys는 왜 그리도 어렵던지...

format c: 를 연습한다고 눌러놓고 Invalid system disk Replace the disk, and then press any key라는 해괴망측한 글자를 보고 담배만 죽이고 있었던 그때였습니다.


주제에 cmos 셋업을 한다고 부팅 때 del을 엄청나게 눌러댄 후 시뻘겋게 뜬 화면을 본 어색함이란...떨고있니~~부르르르!!

그러던 중 파일들이 막대로 표시되는 최정한 씨의 MDIR을 알고 나선 천국에 이른 듯 신났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피시통신...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가 피터지게 서비스 경쟁을 하던 그때.

저도 한곳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나우누리. 나,우리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이란 나우누리였죠.


신천지였습니다. 내 몸을 어디든 옮겨주던 /go 명령어.

슬래시(/)의 위대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때였습니다.


처음에 밤새는 줄도 모르고 빠졌던 채팅도 시들해질 무렵 초등학교 때 배웠던 바둑이 생각난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처럼 근사한 그래픽도 아니었고, 검은 바탕에 흰줄이 그어져 있던 그때의 나우누리속의 바둑. 동호회에서 만났던 형, 동생들.
술은 어찌 그리 다들 좋아하던지. 바둑과 술은 일맥상통인가 봐요. 더 먹으면 죽는다 해도, 들어내지 않는 한 반상의 돌은 죽은 게 없다나요?


15급으로 등록하여 날밤 지새도록 지켜낸 바둑사랑은 끝내 전화비에 굴복을 하고 말았죠. 모뎀시절이라 사용료가 곧 전화료니 한달에 20~30만원 족히 나오는 금액을 어떻게 감당했겠습니까.


시골의 어머님께, 형님께 갖은 거짓말로 단선을 잡던 그 무수한 거짓말들. 지금은 추억이군요.

그래도, 가장 좋은 추억은 지금의 여자친구이자 아내를 그곳에서 만났다는 것입니다.

6개월여를 글자 한자한자 서로의 모습을 모자이크한 후 처음 만났던 석계역 앞 커피숍.

서로가 완성한 모습이 일치했다는 우연속의 필연.

지금이야 그런 류의 만남이 일상화되어 있지만, 당시만 해도 신비 혹은 저속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이들의 편견을 깼던 기쁨도요.


사이버 생활로 사실 잃은 것도 많았지만(사기치신 분들 자수하여 광명 찾읍시다) 저에겐 그 이상으로 얻은 게 많았습니다.

참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전 아직도 사이버에만 오면 즐겁습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치기어린 젊음을, 풍파를 겪어 쌓아오신 연륜으로 다듬어주시고요 톡톡 튀는 더 젊은 분의 상쾌함도 훔쳐냅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기쁨과 슬픔의 공유 또한 즐겁습니다.


다만, 한가지 어느 분께서 해주신 충고는 늘 기억하고 살려 노력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라."


채찍이 아직 부족한가 봅니다. 허벅지에 시퍼렇게 든 멍이 채 없어지기 전에 또다시 그 자리에 매질을 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부족한 노력을 탓하기 전에 더욱 노력하겠다는 변명으로 모면하고 말지만, 그래도 한번만 더.. 용서해 주시겠죠?

 

200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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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프라테 |  2009-03-26 오후 8:55:0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세월이 정말 빠르게 지나감을 느낍니다. 컴퓨터를 접한지 엊그제 같은뎅...ㅎㅎ
잃는것 ㅂ다 얻는 게 더 많도록 해야겠다는....^^  
당근돼지 |  2009-03-26 오후 10:51:3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보고 갑니다..............감사 합니다.  
자룡일검 |  2009-03-27 오후 1:34:4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97~99년 언저리까지 나우누리에서 바둑동 활동했는데 반갑군요 ^^ 아뒤가 어떻게 되셨는지 ㅎㅎ  
수기씨 |  2009-03-27 오후 4:55:3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흠.........음모자님.....오랫만에.....도스란 말을..ㅎㅎㅎㅎ 286컴 사무실에 들어와서 그거 좀 해보려고......20년전 이야긴데...ㅎㅎㅎㅎ  
달선공팔 |  2009-03-27 오후 10:31:5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시골의 어머님께, 형님께 갖은 거짓말로 단선을 잡던 그 무수한 거짓말들. 지금은 추억이군요.
그래도, 가장 좋은 추억은 지금의 여자친구이자 아내를 그곳에서 만났다는 것입니다..>

성공하셧습니다그려 *^^*
 
달선공팔 |  2009-03-27 오후 10:32:3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모니터두 눕히구, 사람두 눕구... *^^*  
달선공팔 |  2009-03-27 오후 10:33:0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라.>

믕...참 좋은 말씀입니다. (__)

 
팔공선달 |  2009-03-30 오전 7:25:3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저도 그때 포기하고 최근에 잡았는데...한가지 배우는데 2만냥씩 들었읍니다.^^;

지금 할줄 아는건 글 올리는거 사진 올리는거 음악 올리는거.

그리고 바둑 두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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