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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모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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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모호성
2013-05-15     프린트스크랩
▲ 바둑은 모호하다. 바둑에서의 창의성은 이 모호함과 연계되어 있는지 모른 다. 창의성,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기사가 다케미야 9단이다. 다들 '우주 류'라 일컫지만 그는 '자연류'로 불러주길 원한다. 자연스런 착점이요 흐름 이라는 것이다. 중앙을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독특하고 모험적인 바둑을 구사 하면서도 한시대를 풍미했다는 건 그가 얼마나 대단한 기사인가를 말해주는 증표다.




<문용직의 수담
手談한담閑談●>
봄날의 세우(細雨)처럼 (3편)


4.
바둑의 모호성

 

이 글은 왜 인도와 주역을 이야기했던가.

상징적 속성과 이미지의 힘, 우리의 인식 태도, 그런 것을 강조하려고 가볍게 다루었다. 형상과 이미지, 그리고 그림자를 지닌 세상. 바둑이라고 다르랴.

 

이 글의 지식은 몇 권의 책에서 얻은 정도. 그러나 자신이 없어도 말해야 할 때가 있다. 아직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을 때, 그럴 때에는 말하는 경망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 문제에 대한 첫 번째 주장에 대해 누군가 비판을 하는 과정에서 보다 공감 높은 이해를 얻을 테니까.

 

이 글에서 그 문제는 첫째로 창의성과 관련된 것이다.

 

창의성은 무엇이며 또 어디에서 올까?

 

그 하나의 답은, 모호한 세상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세상은 모호하고 복잡하다. 그러니 우린 그 모호하고 복잡한 세상을 다루어야만 한다.

 

다루는 방식이 있나?

만약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 이전의 방식보다 유용하다면, 그것은 보다 좋은 방식일 것이다. 이는 하나의 사례에서 문제 해결을 찾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문제를 다루는 meta-방식에 대한 것이다.

 

모호한 세상을 다루는 방식을 의식이 구현해낸다면, 그것을 창의적이라고 하고 싶다.

 

 

4-1. 바둑의 두 영역

 

바둑은 두 개의 영역이 상존하는 곳.

하나는 모호한 영역. 상징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포석이나 중반의 기로.

다른 하나는, 사활이나 맥점, 급소가 걸린 부분적인 논리의 영역.

 

아래 네 개의 기보를 보자. 처음엔 서로가 크게 다르게 진행된다. 전체를 바라보고 구상해 가는 시각이 크게 다르다. 그러나 60수 언저리에서는 차이를 알기 힘들다. 초반으로 갈수록 차이를 많이 느낄 것이다. 오청원 선생이 말했다. “어떤 바둑이든 50~60수 진행되면 서로 비슷해집니다.”

 

(기보1) 고대 중국의 초반

유중보가 여산에서 노파와 두었다는 고사가 전해지는 우선도(遇仙圖). (참조. 2004615, 16일 오로칼럼의 반상일기망우청락집 - 우선도” 클릭)

▼ 기보1

 

(기보2) 근대 일본의 초반

16671020. 어성기(御城碁) 道策 : 安井知哲 (참조. 2004724반상일기玄妙道策 - 반상의 초능력자” 클릭)

▼ 기보2

 

(기보3) 20세기 초 신포석의 초반

1933년 백 명인 秀哉 : 吳淸源

▼ 기보3

 

(기보4) 21세기 초 오늘의 초반

7회 응씨배 결승5번기 제4. 백 박정환 9: 흑 판팅위 3.

▼ 기보4

 

왜 그런가.

사활과 같이 뚜렷한 답이 나오는, 그런 논리적인 영역이 아닌 영역에서는-돌이 몇 개 놓여지지 않은 초반이 그 대표적인 예다-이해와 해석이 뚜렷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 보는 것이 다르다. 초반 반상은 비어 있다. 돌 몇 개 놓인다고 해서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모호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모른다. 서로가 해석이 다르게 나온다.

 

서로가 해석이 다른 이유는 서로가 느낌이 다른 때문이기도 하다.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을 일러 바둑에서는 착수(着手)라고 부르는데, 저마다 다르기에 착점도 저마다 다르게 된다. 주체를 달리 하면, 문화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르다. 개인도 젊을 때 다르고 늙었을 때 다르다.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다. 그런 차이를 폭넓게 조망하면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겠다.

 

 

4-2 모호한 초반에서의 경험

 

다케미야의 초반 발상을 하나 보자.

 

(기보5) 다께미야의 우주류 착수

▼ 기보5

 

이거, 참 대단한 안목이다. 어떻게 저런 착점이 발상될까? 감탄할 뿐이다.

초점은 백5. 이후의 진행을 보니, 과연 백5가 뛰어난 발상이라는 것을 알겠다.

 

참고로 기보를 4개 더해둔다. 다께미야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인데, 실전 백5를 두고 싶었던 이유가 여기에 들어 있다. 천천히 음미해보시라.

 

(기보5-1) 1은 좁다고 보았다

▼ 기보5-1

 

(기보5-2) 그렇다고 백1은 흑2로 공격 당하면 백이 중앙바둑 둘 수 없다

▼ 기보5-2

 

(기보5-3) 1에 흑이 2로 받는다면 (5-1)과 비교해 백이 좋다

▼ 기보5-3

 

(기보5-4) 2로 응수한다면? 이때는 백3 이하로 두어 역시 백이 넓다고 본다

▼ 기보5-4

 

이런 착수는 속기에서는 어렵다. 전국(全局)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안목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스스로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그런 내면의 작업이 없으면 얻기가 힘들다.

 

문득 떠올라서 두어보았다.”

 

큰 승부에서도 신수(新手)를 둔 다음 그리 표현한 것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대국 당시의 마음이 상당히 편안했음을 알 수 있다. 편안하지 않다면 즉, 시간에 쫒기거나 불안하거나 긴장되어 있다면,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무의식적인 사고가 의식으로 올라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초반의 경우다.

 

 

(기보6) test 기보

(기보6)을 보자. 9단의 실전인데, 5까지 두어진 국면에서 당신이 백이라고 하자. 당신의 다음 착수는?

▼ 기보6

 

두 번을 테스트 해보시라. , 5분 후에 두는 것을 먼저 하지는 마시라. 그것은 숙고된 것이니 스스로 인정하는 답이라 첫 번째를 결정할 것이다.

 

첫 번째: 10초를 생각한 후에 두어보시라.

두 번째: 5분을 생각한 후에 두어보시라.

 

같은 문제지만 답은 다를 것이다.

얻어내는 정서도 심사도 충동도 다를 것이다.

 

간단히 말해 상대의 착수를 만날 때, 우리는 먼저 지각한다. 그 다음은 느낀다. 점차 느낌을 잠재의식적으로 몸으로 소화한 후, 그 다음에야 비로소 생각한다.

그 모든 과정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들어있다. 만약 부정한다면 그건 우리 자신의 대부분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 몸 전체를 돌아보는 그런 시간도 없이 창조적인 사유가 얻어질 수 있을까.

 

참고로, 실전에서 백이 둔 바를 보여드린다(기보6-1).

중앙 흑을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을 얻기 전에 먼저 흑에게 응수(6)를 물어본 것이라 하겠다. 물론 (기보6-1)이 답일 수는 없으며, 얼마든지 다른 착상은 나올 수 있다.

 

(기보6-1) test 기보의 실전 진행

▼ 기보6-1

 

 

하나 더 보자.

 

(기보7) 몸이 어떻게 반응하나 - 문제

▼ 기보7

 

몸에 주의하시라.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시라.

흑이 하변 백을 공격하려고 한다. 꼭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수법에 따라 기분은 확연히 달라진다. ‘몸의 소리라고 하면 너무 지나칠지 모르겠다. 우선 공격해보시라. 상변과 중앙을 중시하면서 기분을 살려보시라.

 

(기보7-1) 활발하게 반응한다

▼ 기보7-1

여러분은 어떠신지? 시원하다. 기원에서 이런 기객(棋客) 보신 적 있을 것이다. 1 턱 하니 두어놓고 몸을 뒤로 누이면서 크게 사지를 기지개 켜는 사람. 그는 이런 기분이다. “그래, 일단 머리를 두드려놓고 볼 일이지. 이제 천천히 백의 응수를 기다려볼까. 몸이 느긋하게 쉬라고 하는군.”

 

(기보7-2) 소극적으로 반응한다

▼ 기보7-2

아무래도 돌이 아래로 내려와서 활발한 기운은 얻기가 어렵다. 좁다. 그 반대로 백2는 마치 구름 위로 머리를 내민 것만 같다.

 

기억을 살려보시라. 빵따낼 때의 그 후련한 기운 기억나지 않으신지?

 

 

1981기풍과 취향이라는 코너가 월간바둑에 있었다. 논란의 쟁점이 될 수 있는 장면 하나를 골라 여러 기사(5~6)에게 당신이라면?”하고 답을 청한 좋은 코너였다.

 

기풍과 취향’ 12개월 연재를 보면 12개의 문제가 모두 초반에서 얻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말하는 바는 이렇다. 초반에서야 비로소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이다.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은 바로 그때이다.

 

아래는 그 하나의 예이다.

 

(기보8) 기풍과 취향의 문제

(1981년 명인전 본선. 6단 서능욱 : 4단 강훈)

▼ 기보8. 당신이라면 백3 다음의 수는?

 

문제의 질문은 이것이다. “3 다음 흑의 응수는?”

 

(기보8-1) 고재희 6단의 취향

▼ 기보8-1.

굳이 모난 수법을 찾지 않아도 반상은 묘미가 있다는 견해를 보여주는 흑1이다. 무난한 진행이다. 2는 다소 무거운 인상이다. AB로 전환하는 것이 어떨까. 아래 (기보8-2)가 보여주는 것처럼, 흑은 백을 나누어서 공격하고 싶고, 백은 가볍게 수습하고 싶은 장면이다. 그러나 문제였던 (기보8)에서 백이 우변에 백3 뛰어든 것은 난전을 원한 거 아닌가?

 

(기보8-2) 상대 대국자였던 서능욱 6단의 취향

▼ 기보8-2

1은 두터운 구상. 2는 무겁다. 백이 엷어진다. 2를 백A에 두고 싶지만 흑B, 3, 5 끊어올 것이다. 백이 싸울 수 있을까? 2C에 붙여야 할까? 어려운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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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일등 |  2013-05-15 오전 12:52:02  [동감2]  이 의견에 한마디
<이런 착수는 속기에서는 어렵다.> 기분좋은 표현입니다. 속기만을 고집하시는 분들에게는 뜨끔하겠고요.^^  
철권미나 |  2013-05-15 오전 5:57:0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달마류를 소개하시는군요 ^^*  
철권미나 소녀의 기보를 보내드려야 하는데..
철권미나 you are fun to watch!
高句麗 |  2013-05-15 오전 10:47:53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발명가들의 공통점은 장고 바둑보더 더 오래 생각하면서 연구한다는 것이죠
한가지를 생각할때 몇달 몇년을 가기도 합니다
기발한 수도 오랜 장고 끝에 새로운 수가 탄생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보면 발명과 장고바둑과 공통점이 있다 봅니다  
高句麗 |  2013-05-15 오전 10:49:4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다께미야가 저 대국에서 저러한 수를 창안하기 위해 아마 몇십분 한시간 이상 걸렸을지도 모른다 여러 경우의 수를 다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기에서는 여러 경우의 수를 다 보기 불가능하다 그래서 새로운 수를 창안하기 힘들고 검증된 수만 열심히 찾아서 두어야 한다 그 속에서 창조는 없다  
파나돌 |  2013-05-15 오전 11:30:5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전 허접하지만, 가끔 속기를 신청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로 거절하는 편이지만, 가끔 정 같이 둘사람을 찾기 어려울때 한번씩 두곤하는데요,
제 경험상 속기를 즐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사람보다 한수 내지 두수정도 아래인것 같더군요. 대세관이랄까 수읽기랄까, 일단 형태의 모양은 알아보는듯 하지만 결국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는 속수바둑을 두려고 한다랄까..
 
하이디77 |  2013-05-15 오후 12:11:5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언제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바둑의 창의력은 주로 초반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시네요.
중반 이후에는 주로 맥의 조합에 의한 급소를 찾아가는 과정이겠고요.  
선비마왕 |  2013-05-15 오후 2:08:0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은 자료 감사히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불꽃승부사 |  2013-05-15 오후 3:27:4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문용직 사범님의 글은 참 좋습니다,, 아주 수준 높은 글 입니다,, 다께미야, (무궁정수)의 우주류 (자연류?)... 아주 고 차원적인 바둑 이죠 ㅡㅡ;;;;  
아디없음 |  2013-05-15 오후 7:20:19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그럼 이세돌은 너무나 창의적이어서 초반 포석에서 힘들어 하는 것일까?
이세돌은 스스로 "초반의 모호성" 때문에 초반이 힘들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초반에 대한 이세돌의 생각을 더 자세하게 듣고 싶다.
문 사범님, 초일류와의 대화집도 펴낼 생각 없으십니까?
문사범님 글이 겸손하면서...철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이기도 하고...수준이 최고.
지금 원주에 사는데,여기 오시게 되면 최고의 대우로 한잔 하고 싶습니다. ㅋ  
高句麗 |  2013-05-15 오후 8:13:5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우리나라는 거의가 10분짜리 바둑입니다 10분안에 제대로된 포석을 짜기가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너무 10분짜리 바둑만 두다 보니까 제대로된 포석공부를 하기가 힘들어서 그런거 아닌지요  
lemmata 님의 말씀대로 속기전에 중국식 포석 진행을 보면 거의 똑같지요.
세빌라 아무리 장고바둑이 수준이 높다고 해봐야, 우선 바둑리그가 살아남기 위해서 속기가 선택된 이상 어쩔 수 없음. 게다가 한국인의 '빨리빨리' 종특도 장난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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