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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둑, 왜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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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둑, 왜 어려운가
2013-10-07     프린트스크랩
▲ 이창호 9단


 1. 이창호의 오늘을 보면서 

10월 4일 ‘사이버오로’에 인터뷰가 하나 올라왔다. “바둑이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라는 제하의 글.

이창호 국수가 말했다.
“특별히 컨디션이 나쁘거나 한 것은 없다. 단지 예전보다 바둑이 어려워졌다. 후배들이 강해진 것도 겹쳐 있고...”

읽고 생각나는 바 있었다.
미리 말씀 드릴 것은 이 글이 이창호 국수의 인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이 글은 인터뷰를 읽었을 때 문득 뭔가 생각에 떠올랐던 것을 표현할 뿐이다.

이창호는 부진하다. 확실히 그는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다. 뒷날 돌아보면 이도 쉽지 않은 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러나 과거의 그를 생각할 때에는 매우 아쉽다. 꽤 시간이 된 듯도 하다.

왜 그럴까.
그의 나이 때문이다. 75년생이니 올해 나이 만 38.

나이가 들면 승부에 약해진다. 예(藝)나 기(技)에서 말하는 소위 정신력은 몸의 함수. 몸이 버텨두지 않으면 집중은 어렵다.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 넣자. 이 글 쓰는 사람은 나이 만 55. 중반에 접어들면 어지럽다. 수가 보이지 않고 판단이 되지 않는다. 알아도 멍하다. 생각이란 게 이토록 하기가 힘든 것일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나이 40에도 분명했다.

바둑은 두 개의 영역이 상존하는 곳.
하나는 초반. 상상력과 감성을 동원해서 판단해야 하는 세계.

중반 이후는 전혀 다른 세계다. 돌과 돌이 얽혀들어 계산과 전투가 핵심이 된다. 반상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돌과 돌이 얽혀드니 초반과 달리 흑과 백이 서로 적절한 거리를 둘 수 없어 긴장은 고조된다. 내면에 긴장이 세워진다. 인간이라면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인간은 적과 가까이 있을 때에는 긴장과 불안을 느끼도록 진화해왔다. 반상이라고 다를 바 없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세상을 멀리서 바라보고 싶은 심정이 온다.
삶은 고단한 것. 세상에 나가 성공하는 것은 싸우는 것. 세상과 싸우는 것이 인생의 반(半)이라 하겠으나, 충분히 싸우고나면 지치게 된다. 돌아오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러므로 나이 든 기사에게 있어 중반 이후는, 인간의 자연스러움과 뭔가 맞지 않는 어려운 세상으로 다가온다. 승부세계는 냉정하여 예외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이 38이면 세상에서는 겨우 중반 아닌가?
바둑에서 인생의 주기(週期)는 짧다. 승부라는 특성 때문에 다른 예(藝)의 세계에 비해서도 수명이 짧다.   
고금을 돌아보면 그 어느 국수 명인도 나이 20대 초반엔 자신의 성장을 다했다. 실력에서 정점에 올랐다. 그 후엔 오래 지켜봐야 20년이고 10년이면 힘에 부치고 몸과 마음이 크게 지쳤다. 누가 전장에서 10년을 뛸 수 있는가.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었던 1960년대에도 나이 40이면 퇴조를 경험했다. 
당시의 바둑을 보면 오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법이 느리고도 느린 기분이 든다. 그렇게 느린 반상에서도 그랬다.


2. 바둑이 어려워진 이유(1)

“바둑이 어려워졌다.”

어려운 이야기다. 솔직히 말해 이 글의 수준에선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다. 이국수와의 실력 차이 때문이 아니라, 최근 10년의 반상 변화를 과연 제대로 알고 있는가, 그 시각에서 의문한다.

과연 바둑이 어려워졌는가.

어려워졌다. 그리 본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려워졌는가?

그것에 답하려면 다음 두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하나는 중국식 포석에 관한 것이다.
중국식 포석은 다양한 변형과 함께 여전히 반상을 누비는데, 그 이유는 뭔가?

다른 하나는, 최근의 “초반, 급하지 않은 돌의 흐름”이다. 뭔가 포석에서 변화가 있다. 예를 들어 화점에의 걸침에서 눈목자 걸침이 나온다. 포석에서 3선에의 착수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1960년대 흐름으로 두는 바둑도 적지 않다. 소목에서의 변화는 더욱 60년대식이다. 왜 그런가?

(기보1)은 지난 10월 4일의 바둑 초반. 최근에는 이렇게 느린 흐름으로 진행되는 것이 많다.

(기보1) 흑 김지석 9단 백 김형우 6단. KB바둑리그 11라운드.


먼저 중국식 포석부터 보자.
중국식 포석이 여전히 포석의 주류를 점하는 것은 덤 때문이다. 그것도 6집 반이라는 큰 덤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덤이 커지면 흑의 입장에서는 귀를 굳힐 여유가 없다. 귀를 굳힌다는 것은 변화를 주저하는 것. 그런데 변화가 없다면 반상에서 흑은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먼저 둔다는 것은 돌의 권력을 높일 여지를 흑이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 반상의 변화를 주도할 때에야 흑돌의 권력을 높일 수 있는데, 변화는 공격하는 것과 밀접하다. 그러나 굳히는 것은 수비의 태도이다.

다소 추상적인 논리라는 인상을 주겠다. 그러나 바둑에는 이런 논리가 거의 절대적으로 개입한다. 딱 부러지게 논리적인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기사들은 몸으로 감각으로 이런 논리를 분명하게 느낀다.

이에 대해서는 2007년 9월 7일 오로산책에 쓴 글, “모호한 초반, 소목이냐 화점이냐”를 참조해주기 바란다. 그에 약간의 설명이 더해 있다.

요컨대 흑의 입장에서는 굳힘을 급하게 가져서는 아니 된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변으로 벌려서 반상을 주도하려는 수법 외에 남는 것이 없다.
변을 중시함으로서 귀 굳힘을 넘어서려는 것. 그것이 중국식 포석의 핵심이다.


3. 바둑이 어려워진 이유(2)

둘째는 최근 돌의 흐름에 관한 것이다.


 (기보2)  “초반, 급하지 않은 돌의 흐름.”


(기보2)는 굳이 누구의 바둑이랄 것이 아니다. 최근 좌상귀 흑5 눈목자 걸침이 가끔 두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급하지 않은 돌의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앞서 (기보1)과 다를 바 없는 진행으로 느슨한 흐름을 안겨준다.

덤이 6집 반이나 되는 세상인데, 흑이 이리 느슨한 기분을 갖고 두어도 되나?

잠깐의 실험, 잠깐의 유행으로 그치는 걸까?
아니면 이리 두어야만 하는 걸까?

바둑이라는 놀이의 속성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으리라 본다.

바둑은 어떤 놀이인가?
오늘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다음 속성을 강조하고 싶다.

개인의 놀이지만, 공동체의 영향을 거의 벗어날 수 없다.

바둑은 그런 놀이다.
우리가 어떤 수를 둔다는 것은 - 둘 수 있는 것은 - 그 수법에 대해서 이미 누군가가 또는 사회가 권위를 실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적어도 대국자 당사자는 그리 느낀다. 앞뒤를 훤히 다 알아서 두는 수법은 없다. 사회적 영향을 받지 않고 착수할 수 있다면, 그건 맥점의 차원에서나 그러하다. 맥은 논리적인 것이라 답이 분명하다. 그러나 초반은 불안한 세계라서 홀로 걸어가기란 여간 부담이 되지 않는다.

초반은 모호하다. 그러므로 초반의 판단에는 계산이 들어가지 않는다. 초반엔 공간을 감각적으로 다루는 노력이 요청된다. 논리가 아니라 감각적으로 다루는 것이 주가 되는데, 물론 논리와 감각은 서로 섞여져서 대국자의 사고를 효율적으로 만든다.

그런데 “감각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바둑에서 “감각”이라고 말하곤 하는 습관을 조심스레 살펴보면, 반상을 이해하는 독특한 방식들을 모아서 “감각”이라는 말을 대충 붙이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수(手)가 논리적으로 당연한 경우.
“그거 감각 아냐?”
마치 반론처럼 말한다.

모호한 “감(感)”이지만, 대충 그런 자리 아냐? 그렇게 서로가 묵시적으로 동의할 만한 곳에서 쓴다.
“그 정도 감각이지...”
더 이상 논의를 진행하기 어려운, 그런 반상 한계를 인정한다.

기사들끼리 이런 저런 자리에서 뭔가를 표현하고 싶을 때.
“감각적으로 말하면...”
세상의 일을 다룰 경우에도 바둑의 언어를 사용해서 반상의 이미지를 오버랩 한다.
역(逆)으로, 반상으로 치환하지 않으면 쉽게 설명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반상은 반상 밖의 다른 세상과 쉽게 오가고 섞여진다. 바둑에서 생활의 대부분을 살아가고 있기에 오는 현상이다.

“감각”이란 모호한 단어가 여러 방식으로 쓰이고 있음을 볼 때, 바둑의 어려움은 모호함을 어떻게 다루느냐? 그 방식에 크게 의존함을 짐작한다.
바둑이 자신만의 독특한 이해방식을 찾아왔음도 알겠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문 영역은, 다들 저마다의 이해 방식을 갖고 있다.
전문 개념(jargon)을 동원해서 저마다 다른 세상을 저마다의 독특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기에 모든 공동체는 그 공동체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 결과 모든 구성원은 공동체의 언어에 담긴 공동체의 사유 방식을 강요받는다.
바둑에서도 다름이 없어, 개인의 감성, 감정까지 아우르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수법마저도 논리보다는 공동체의 판단과 잠정적인 분위기, 정서(ethos)에 그 근거를 두는 경향이 농후하다.

(기보1)과 (기보2)와 같이 둔다는 것은 저런 흐름에 대해 공동체가 최소한 은연 중에 공감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저 (기보1)과 (기보2)의 흐름은 오늘의 초반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여겨진다.

물론 그 어느 수법도 먼저 둔 개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개인이 그런 수를 두게 된 배경에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대개의 경우, 공동체의 긍정이 전제되어야만 착상 가능하며 또 연구도 지속 가능하다.

물론 논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변을 중시하는 중국식 포석(기보3)에서는 화점 날일자 걸침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상대의 돌에 가까이 다가 간 다음, 지키지 않고 손을 빼는 것이니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눈목자라면 그 공격의 위협에서 벗어난다. 한 칸 먼 거리 아닌가.  

(기보3) 중국식 포석의 기본


그런 논리는 그러나 몸이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에 비해서는 중요성이 떨어진다.
변을 강조하고 싶되, 상대의 공격으로부터는 멀어지고 싶은 것. 그런 몸의 감각이 먼저 와야 저 눈목자 걸침을 착상하고 둘 수가 있다.

이제 최근 기사들이 느슨하게 두고 싶은 것을 알겠다.
흑은 변을 강조하는데, 그렇지만 백의 공격은 피하고 싶다.
그렇다면 눈목자를 두자.

그런 태도는 반상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느슨한 듯하지만, 사실은 조심스러워하는 것이다.

그것이다.
그런 태도가 오늘 반상에서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변화를 가져오는 기반이 되었다. 조심스러워하는 것이기에 어려운 것이다. 논리로 끝나지 않기에 어려운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이국수도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요즘의 바둑 흐름이 조심스러움에 근거한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과연 잠깐의 유행인지, 아니면 그 방식으로 두는 것이 바람직해서인지는 모르겠다. 그 점이 분명치 않은 것도 어려운 이유의 하나가 되겠다. 1년 2년 지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다루고 싶은 것은 심리다.
예를 들면, (기보2) 눈목자 걸침은 현재의 한국 바둑 불안한 상황을 일부 드러내는 수법으로 본다. 

바둑 공동체, 기사 개인의 심리, 수법.
그것은 함께 하는 것으로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알겠다. 앞서 중언부언 했던 몇 가지 용어, 초반, 모호함, 감각 등은 바로 이 심리적 문제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겠다.


4. 수법은 반상 밖 현실을 반영한다

최근 한국 바둑이 주춤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온 것이긴 하지만, 그래서 프로들은 몸으로 언제부턴가 느끼고 있었을 것으로 보지만, 그러나 현실은 갑작스럽다.

오래 전부터의 현상 하나를 생각해보자.
신예들이 패기 있게 두지 못하고 수비에 치중하며 또 끝내기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왜 그런 현상이 있는가.
그 이유로 꼽혔던 것은, 입단에의 강박과 짧은 제한시간이었다.

입단의 좁은 문과 나이 제한 등은 지망자에게 큰 부담을 안겨준다. 입단에 대한 과중한 부담은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게 한다. 10대 말 입단이 보통인 지나치게 어려운 관문은, 현재를 통과하지 못하면 미래는 아예 없다는 논리를 키운다. 그런 경우, 장기간의 실험과 모험을 요청하는 “개성(個性)을 키우는 것”은 실행하기 어렵다.

개성이 부족하면?
그러면 세상의 유행을 따르게 된다.
평균을 지향한다.
아쉽게도 평균은 현실을 넘는 힘을 갖지 못한다.

짧은 제한시간의 영향도 비슷하다.
판단할 여유가 부족하니 단속적인 전투가 반상을 지배하게 된다. 그러면 어찌되나? 위험부담이 적은 수법을 둘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초반 중반엔 잘 알려진 그래서 평범한 수밖에 둘 수 없으며, 자신감은 점차 사라지고 수비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자연스럽게 바둑의 내용은 중시하지 않고 결과를 강조한다. 끝내기 중심으로 승부를 이끌고 싶은 내면이 생겨난다.

그 결과의 하나도 대부분의 기사가 평균의 수준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평균에 머물면 창의성은 얻을 수가 없게 된다.

이제 한국 바둑에 심리적 위축감이 더해진다. 아니, 이미 오래 전부터 더해졌는데 간과했을 뿐이다. 반상 위 수법의 위축감은 10여 년에 걸쳐 바둑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현실과 밀접한 현상으로, 최근 중국에 밀리는 것은 그 귀결의 하나라 하겠다.

오늘의 주제에 한정하면 이렇다.

바둑의 사회적 가치가 떨어지면?

그러면 기사들이 느끼는 바둑 한 판의 가치도 떨어진다.
그러면?

반상에 놓여지는 한 수 한 수의 가치도 떨어진다.
그러면?

반상에서 신선한 모험을 할 필요가 줄어든다.
누가 가치 낮은 재화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가. 그건 인류의 행동 논리에 어긋난다.
반상에는 진부한 수법만이 더해진다.

참고로, 3선은 안정감을 주는 심리적 언덕인 1선에 – 4선보다 - 가깝다는 것을 확인하자.
오랜 만에 바둑을 둘 때엔 바둑돌이 자신도 모르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경험해 본 적 있을 것이다. 3선에 느슨하게 두곤 하는 오늘의 경향이 그런 심리적 위축과 관련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중국에서도 3선의 수법이 적지 않던데?

그러나 다르다.
표현에 한계를 느끼는데, 대국 내용을 볼 때 힘이 다르게 다가온다. 주도적인 자세로 두는 것과 밀려서 두는 것은 크게 다르다. 바둑을 감상할 때 이 글은 그런 차이를 느낀다.


5. 이창호의 문제를 넘어서

요약하면, 이국수가 바둑이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 현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인생 주기 효과(life cycle effect)와 반상 밖의 문제.

중년에 다다른 때문이라는 인생 주기 효과는, 초반 수법이 최근 눈에 띄게 변천하고 있는 것에 더욱 부담을 받는다. 언제나 변화는 어려움을 안겨준다.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는 소년이나 젊은 기사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미 기본적인 공부를 오래 전에 마친 기사에게 변화는 언제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두 번째는, 반상 밖의 변화.
한국 바둑계의 장기적인 우울이다.

반상의 수법은 반상 밖의 세상이 주는 영향을 피할 수가 없다.
바둑계가 반상 위의 세상을 상당 부분 제약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 제한시간이나 덤만 보더라도 반상 밖의 세상이 반상을 얼마나 크게 규정하는지 알 수가 있다.


요컨대 반상은 바둑의 안팎을 반영하고 또 그것을 총체적으로 느끼는 세계이기에, 반상은 물론이고 바둑의 공동체도 어려운 환경에 접어들었음을, 오늘 인터뷰를 보면서 새삼스레 알겠다.

크게 보아 바둑의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고 기사의 수가 적정선을 훨씬 넘어선 현실은, 젊은 기사들로 하여금 미래를 우울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 반상의 불안으로 연결되고 있다. 누구라도 자신이 속한 세계가 활발하지 않으면 곧 기분의 침체를 느끼지 않는가.
 
개인의 연구나 공동 연구 정도로는 반상의 불안과 성적의 위축을 피할 수가 없으며, 반상에 영향을 미치는 바둑계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것이 그 해결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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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20 |  2013-10-07 오후 2:51: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캬~~~ 문용직 박사님의 글은 참 심오 합니다,,, 서울 용산고 ㅡ 서울대 정치 외교학과 출신의 박사 답게 글이 상당한 깊이가 있고 좋네요,, 많이 배웠습니다, 꾸우버억//////////  
北極熊 서강대입니다.
대학원 서울대,정치학박사님
아침처럼 |  2013-10-07 오후 7:48:4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한국기원 사무총장으로  
팽나무 |  2013-10-08 오전 12:56:0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한 시대 일인자의 말 한 마디를 흘려 버리지 않고, 이처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훌륭한 글을 남겨주시니, 일인자의 격이 달라 보이고 바둑계의 위상이 품격이 한층 높아 보입니다.  
황태포 |  2013-10-22 오후 9:22:3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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